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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논담 /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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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25  22: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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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비유와 같습니다. 얼음이 율법이라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된 것이 진리입니다. 성경과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 내 생각, 율법과 한마음 한뜻이 돼 있는 육신의 생각이 녹아 진리로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들 때 땅인 나에게서 영의 생명이 싹 트게 됩니다. 

 

우리에게 모형으로 주신 계절의 징조에서 얼음이 녹을 시기는 봄이 올 때입니다. 누군가가 내 귀에 들려주는 영과 진리의 말씀에 의해, 따뜻한 기운을 가진 말씀이 땅인 내 마음을 녹이면, 율법이 녹아내리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때가 옵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성경 말씀을 보던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전해주는 영과 진리의 말을 듣다가 보면 어느 날, 육체를 따라 판단하던 내 생각이 벗겨지면서 ‘아! 진리가 이런 것이구나’할 때, 율법이 녹으면서 내 마음에 봄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시편 31:4> 하나님 말씀은 <비밀히 친 그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에 걸리는 자를 기다리는 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사냥꾼이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덫은 나쁜 덫이 아니라 땅의 생명을 하늘의 생명으로 바꿔주기 위한 비밀의 덫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걸린 자들의 처음은 육체의 사고방식을 따라 잘 지켜야 할 말씀으로 알고 말씀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육체의 판단을 따라 가지만 가끔은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자들이 생깁니다.

 

자기를 속이지 않는 이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사람의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게 됩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율법을 보던 자, 사람의 뜻을 따라 말씀을 받아들이던 자를 성령의 생각을 따라 율법을 보게 함으로써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자유를 얻게 하십니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태복음 23:26> 우리는 누구나 영의 눈이 없는 바리새인으로 시작합니다. 바리새인 때는 율법을 지키려고만 했지 율법 안에 있는 의미, 율법의 뜻, 율법의 비밀을 알려고 하질 않는 때입니다. 

 

겉 말씀 율법 안에는 속 말씀 진리가 있습니다. 율법과 한 몸이 된 육체의 사고방식이 벗겨져야 그 안에 있는 깨끗한 말,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펀단하던 때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가 됩니다. 말씀의 겉인 예수(울법)가 앞에 있을 때는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때이고 말씀의 속인 그리스도(진리)가 앞에 가는 때는 성령의 생각으로 살게 되는 때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 119:18>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내 눈이 열리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영과 진리의 말씀은 영과 혼을 구별하여 나누는 능력이 있어 귀에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그리스도(진리)를 박해하던 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요한복음 8:43> 우리의 처음은 진리의 하나님 대적자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진리가 없는 하나님의 대적자를 사탄, 마귀, 귀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대적자, 진리의 말씀을 육체를 따라 행하게 만드는 육적 사고방식을 가진 나를 내 마음의 성전에서 영과 진리의 말씀으로 쫓아내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대적자가 쫓겨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기의 욕심대로 사람의 뜻을 행하는 자로 하나님을 살인하고 영과 진리의 말이 아닌 사람의 말로 거짓을 말하는 자로 살고 있음에도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하나님의 말을 들을 줄 알게 영과 진리의 말씀으로 세례를 행하면 그때서야 들을 귀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4> <나의 이 말을 듣고>에서 “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표면적인 말 로고스, 양면성이 있는 말, 눈에 보이는 말, 성경 66권이 로고스입니다. 

 

그런데, 표면적인 말 ‘로고스’ 안에는 이면적인 말, 눈에 보이지 않는 말, 육신의 생각이 죽어야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 ‘레마’가 있습니다. 이 진리가 하나님의 생명이며, 언약의 성령을 통해 진리를 우리 내면에 만들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가 깨달아질 땐 듣는 이의 마음이 뜨겁습니다.

 

<행하는 자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표면적인 말과 이면적인 말을 통해 진리로 새우는 일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을 듣게 하고 그 안에 있는 레마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 눈에 보이는 예수, 문자 말씀을 보게 하고 그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진리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로마서 7: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사도 바울이 율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율법의 요구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율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자복이 나와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인간에게 내린 명령으로 오해하여 살인 간음 도둑질하지 말라는 문자 말씀에 갇혀 자기를 속이면서까지 자기 의를 챙겨갖는 때, 사람의 뜻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준수하며 살던 사도 바울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때까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좁은 길, 예수(율법) 안에는 살아나야 할 그리스도(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계명이 이르매> 율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의 영이 사도 바울에게 이르니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인간이 생각하는 행위적 죄를 죄로 알았던 육신의 생각이 벗겨지는 죽음, 오해했던 율법과 함께 인간의 사고방식이 무너지는 죽음, 말씀의 겉인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려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 하늘의 말을 땅의 말로 오해한 나를 위해 예수(율법)가 죽음으로써 하나님 말씀 율법이 그리스도(진리)로 보이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하나님과 원수 되는 육신의 생각이 죽음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생각으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살았을 때>는 율법에 갇힌 나,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 지도 모르고 살 때, 깨어나야 할 영(진리)으로서의 나가 있는 줄 모르고 육(율법)으로서의 내가 주인 행세를 하던 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나니아가 전하는 영과 진리의 구별하는 말씀 안수로 인하여 육신의 생각이 죽음과 동시에 성령의 생각이 살아나는 복음에 눈을 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은 율법(예수)으로 좋은 터를 쌓아 진리(그리스도)라는 참된 생명을 취하려는 하나님의 뜻, 자기 백성을 창조하는 과정을 계명 즉 말씀의 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영과 진리인 하나님 말씀이 인간에게 오면 육신의 생각으로 변질되어 육체의 일로 오해하게 됩니다. 누룩이 들어간 변질된 말이 고침을 받는 것, 아니 말이 나오게 만드는 근본 원천인 생각을 고쳐 땅의 생각을 하늘의 생각으로 변화시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종국에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게 하는 말씀이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아무 말이나 듣는 게 아니라 율법인 나를 부수는 영과 진리의 말,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왜 예수가 죽어야 하는지, 왜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어 내가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것이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비밀의 구원입니다.

 

이화율 <e장애인신문> 영남지사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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